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느긋하고 평화로운 도시. 태국의 화려함도, 베트남의 열정도 아닌, 느리고 고요한 삶의 방식으로 은근하게 번져오는 라오스의 유혹. 사원의 도시가 잠 깨어나는 모습을 보며 맨발로 거니는 골목길들.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에서 생태환경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국토의 75퍼센트가 푸른 숲으로 덮여 있고, 북부의 산과 남부의 평원을 넉넉히 적시며 메콩강이 흘러간다. 특히 라오스 북부지역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다양한 소수부족들의 삶이 매력적인 곳이다. 그 중에서도 루앙프라방은 여행자들에게 ‘영혼의 강장제’로 불린다. 칸강과 메콩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걸터앉은 루앙프라방은 황금 지붕을 인 오래된 사원들과 프랑스풍의 저택들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는 옛 도시다.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 프랜지파니 나무 아래서 아열대의 더위를 식히노라면 짙은 꽃 향내가 도시를 휘감고, 골목마다 들어선 식당들에서는 프랑스와 아시아의 풍미가 뒤섞인 요리를 선보인다. 저녁마다 도시의 중심가에 들어서는 노천시장에서는 산에서 내려온 소수부족들이 펼쳐놓은 수공예품들이 여행자의 지갑을 얄팍하게 만든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여행자들이 몰려드는데도 이 도시는 아직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중심지에는 버스가 다니지 못하고 통금으로 인해 떠들썩한 밤 문화가 없기 때문일까. 루앙프라방의 가장 큰 매력을 꼽는다면 이곳 사람들의 순박한 품성과 느긋하고 평화로운 삶의 방식일 것이다. 급한 발걸음의 여행자들마저 이곳에서는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에 금세 동화되고 만다.
동서양의 조화 속을 거닐다
루앙프라방을 걷는 일은 동양과 서양의 조화 속으로 걸어가는 일이다. 라오스 최초의 통일 왕국 란상(Lan Xang) 왕조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은 도시 곳곳에 서른 개도 넘는 불교사원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프랑스식 건물들도 어긋나지 않는 얼굴로 살아있다. 태양이 달아오르기 전인 이른 아침에 탈랏 달라(Talat Dala) 시장에서 걷기를 시작하자. 루앙프라방의 상업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아침 시장의 활기를 온몸으로 들이마시며 오감을 자극하는 냄새와 풍경에 몸을 맡기고 걷자. 시장을 나와 동남쪽으로 뻗은 타논 세타틸랏(Thanon Setthathilat) 거리를 따라간다. 첫 번째 큰 사거리에서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어 150미터쯤 가면 왓 위수나랏(Wat Wisynalat) 사원이다. 루앙프라방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사원 중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1531년에 지어졌다. 바로 옆 근사하게 늙은 두 그루의 반얀 나무가 있는 왓 아함(Wat Aham) 사원까지 함께 둘러본 후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오른쪽으로는 칸(Nam Khan)강이, 왼쪽으로는 푸 시(Phu Si) 언덕이 펼쳐진다.
강변의 노점상들을 기웃거리며 계속 북동쪽으로 강을 따라 올라가면 칸강이 메콩강과 합류하는 지점. 강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지는 강변길을 걸어도 좋고, 중간의 골목으로 들어와 왓 시엥 통(Wat Xieng Thong) 사원을 비롯해 빼곡히 들어찬 사원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소요해도 좋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황금색 지붕이 찬란한 왓 시엥 통 사원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훌륭한 사원으로 꼽히는 곳으로 1560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사원이다. 마지막으로 들를 곳은 북서쪽 강변의 켐콩 거리의 왕궁 박물관(Haw Kham). 시사방 봉 왕의 궁전이었던 이곳은 전통적인 라오스 양식과 프랑스 스타일이 조화를 이룬 건물이다. 지역 주민들은 이곳을 쫓겨난 왕족들의 원한 서린 영혼이 머물고 있는 ‘헌티드 하우스’로 믿고 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면 도시의 외곽을 한 바퀴 돈 셈이 된다. 2킬로 남짓 되는 짧은 거리지만 곳곳의 사원들을 둘러보노라면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만 간다.
여유롭게 어슬렁거리는 재미
더위에 지친 몸을 쉬며 오수를 즐긴 후 늦은 오후가 되면 다시 거리로 나오자. 여행사며 레스토랑, 인터넷 카페 등이 몰려있는 중심지 시사방봉 거리(TH Sisavangvong)거리가 오후 걷기의 출발점이다. 제법 세련된 카페며 빵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루앙프라방 최고의 번화가지만 그리 번잡한 느낌은 들지 않는 거리다. 이 거리에는 오후 5시가 되면 바리케이트를 치고 차량 출입을 막은 후 노천 시장이 들어선다.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은 여행객을 채근하는 호객행위가 없어 여유롭게 어슬렁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노점을 기웃거리며 주전부리를 하거나 해찰을 피우다가 햇살이 설핏해질 무렵이면 발길을 돌려 푸 시 언덕으로 향하자. 100미터 밖에 되지 않는 높이지만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루앙프라방의 랜드마크다. 계단을 수놓은 프랜지파니 꽃잎을 즈려 밟으며 언덕을 오르면 이제 남은 일은 한 가지. 이 도시로 노을이 내려앉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오랜 세월 이곳 주민들의 젖줄이 되어준 메콩강과 칸강, 그 너머 낮은 산들의 어깨를 붉게 물들이며 노을이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이 느긋한 도시를 떠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자료출저:네이버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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